교육부는 지난 7월 17일, 보도자료에서 ‘고교학점제, 현장 부담 완화를 위한 개선안 만든다’고 발표했다. 개선안은 금년 하반기에 마련한다고 했다. 현재 교육부가 파악하고 있는 문제점은 ‘새로운 제도 시행에 따른 생소함과 불편, 다양한 선택과목 개설 및 전과목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에 따른 교사의 업무 부담, 학생‧학부모의 정보 부족 등’이라고 했다. 이 보도자료에서 구체적으로 적시된 부담은 다양한 선택과목 개설과 최소 성취수준 보장이다.
고교학점제는 2017년 11월 24일, 교육부가 ‘교육과정 다양화로 고교 교육 혁신을 시작한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면서 추진하기 시작했다. 당시 보도자료에서는 “교육부는 고교체제 개편, 수업・평가의 혁신, 대입제도 개선 등을 위한 종합적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그 핵심과제로 고교학점제 도입을 추진한다.”고 했다. “특히, 고교학점제는 고교체제 개편(고입) 및 대입제도 개선과의 연결고리이자 고교 교육과정 운영 전반의 변화를 촉발하는 기제로서, 단위를 학점으로 전환하는 차원을 넘어 학생의 과목 선택권 보장, 교수학습・평가 개선 등을 통해 고교교육의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물론, 학교 내 교육과정의 다양성을 확보함으로써 안정적인 고교체제 개편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이에 의하면 고교학점제는 특목고와 자사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하는 고교 체제 개편을 목표로 하면서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과목 선택형 교육과정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이다. 고교학점제 최초 추진단계에서는 외국어고나 국제고에서 배울 수 있는 과목도 일반고에서도 선택해서 배울 수 있게 하면서 이들 고교를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정책이었는데, 지난 정부에서 외고와 국제고를 존치하기로 하면서 수강할 수 있는 과목만 늘어나게 되었다. 과목수가 많다보니 이 과목을 다 개설해야 하느냐, 선택지도는 어떻게 하느냐 등 불만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학생이 고등학교 2, 3학년 과정에서 배우는 과목은 수능 과목을 포함하여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사회와 과학의 일반 선택과목과 진로 선택과목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방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현재 진행중인 대입에서도 핵심 과목과 권장과목 등을 대학이 진로에 따라 제시하고 있으며, 고등학교에서는 이를 참고하여 선택 지도를 하고 있으므로 크게 낯선 제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과목이 많아서 줄여야 한다면 줄이는 작업을 추진하겠지만, 교육과정을 개정해야 하고, 개발된 교과서와 관련된 부분도 있어 금세 정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즉 당분간은 이 교육과정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당장 개선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대처해야 한다.
그런데 과목 선택이 복잡해진 것은 과목이 많아서라기보다 학기 이수를 하게 된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국어, 수학, 영어는 대부분 학기 이수를 했고 그 외의 과목은 학년 이수를 했었다. 고교학점제 시범 운영기간에 학년 이수를 학기 이수로 바꾸는 일이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파악했어야 했는데, 대부분 학교에서는 이 부분은 그대로 두었었다.
학기 이수로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하게 된 것은 미이수제 도입과 연결된다. 교육부는 2017년에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겠다고 할 때, 과목 선택 말고도 교수학습・평가 개선을 통하여 학업 성취에 대한 질관리를 하겠다고 공언했었다. 학업 성취에 대한 질관리를 도입하려다 보니 미이수 제도를 실시하게 되고, 미이수 여부를 결정하려다 보니 모든 과목을 학기 이수로 편성하게 되고, 미이수 학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도하기 위하여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2017년의 보도자료에서는 ‘미국, 핀란드 등 고교 단계에서 학점제를 운영 중인 국가들의 경우에도 세부 운영방식은 다양하나, 학생 선택을 반영할 수 있는 교육과정 운영의 유연성과 학업성취에 대한 질 관리 강화를 특징으로 한다.’고 하여 미이수 제도 운영이 보편적인 경향임을 밝혔다.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나라 교육과정도 모든 학생들이 일정 수준의 학업 성취를 해야 이수를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의를 고교학점제를 하면서 도입하게 된 것이다.
공부를 안 하는 학생은 미이수시키고 나아가 졸업을 유예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1990년대 말 교실붕괴가 문제시 되었을 때부터 나왔었다. 그러던 중 2007 개정 교육과정을 준비하던 2000년대 초반부터 ‘잠자는 교실’을 깨우는 방법으로 미이수제 도입을 검토했었는데,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준비하던 2013년 경에는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어 학생이 참여하는 수업을 하는 교실이 늘어나고 ‘잠자는 교실’ 이슈가 해소되는 듯 보이자 202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미이수 운영을 도입하지 않게 되었다.
이후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미이수제가 처음 도입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2002년 처음 적용된 제7차 교육과정 때, 10학년의 수학과 영어는 10학년 1학기에 일정한 성취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보충지도를 해서 다음 2학기 과목 이수를 허용하는 제도를 운영했었다. 이 제도를 단계형 수준별 교육과정이라고 했다. 고1에만 수준별 교육과정이 있는 것이 이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2, 3학년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과목을 선택해서 이수하므로 미이수하는 학생은 없다는 것을 전제로 교육과정을 운영했었다.
문제는 수학과 영어 과목을 1학기에 운영한 결과 수준 미달 학생을 여름방학 중에 지도해야 하고, 2학기 수준 미달 학생은 겨울방학에 보충 지도를 해야 하는데, 이 학생들이 수업 받으로 나오지를 않으니 수업 대신 과제를 주고 형식적인 평가를 거쳐 이수를 인정해 주는 방식으로 변칙 운영했다. 학기 중에도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을 보충 받으러 방학 중 등교하게 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었다.
결국 수준별 교육과정이 문제가 되자 국가수준에서 수준별 교육과정을 제시했던 것을 2016년에 삭제하고 학교가 알아서 학생의 성취수준 도달을 책임지도록 하는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부분개정했다. 총론에서 삭제된 부분은 시・도교육청이 학교에 수준별 교육과정 계획을 세우고 이행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중 3번항을 삭제했다.
단계형 수주별 과목은 수학과 영어, 심화・보충형 수준별 과목은 국어, 사회, 과학, 과목 선택형 수준별 교육과정은 2, 3학년 전 과목에 해당됐다.
또한 이에 따른 세부 사항도 삭제했다.
이후 국가 교육과정 차원에서 제시한 성취 수준 충족 여부에 따른 보충지도는 학교가 권한을 가지고 실행하도록 바뀌게 됐다. 학교는 행정적인 부담을 줄였는데, 결과적으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은 더 줄어들었다. 이 결과는 보충지도를 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는 아니고 학생부종합전형 확대에 따른 학생 참여 수업으로의 개선에 따라 생긴 결과였다.
고교학점제에서 미이수 도입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이미 이런 과거를 거울삼아 미이수 제도는 있지만 미이수 실행 권한은 학교에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안을 말했었지만, 반영되지는 않았다. 제7차 교육과정 초기의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고교학점제에서 문제가 되는 점을 개선한다면, 미이수 제도는 학교가 기준을 정해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시행하고, 과목 운영은 학기로 하는 것을 권장하지만, 학년 이수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이 되지 않을까? 출석이 수업일의 2/3가 안 되면 이수가 안 되는 점은 2022 개정 교육과정 이전에도 적용되고 있으니 그대로 둘 것이고, 결과 처리에 대한 행정적 처리 방식은 학교에 위임하면 되고, 학업 성취로 인한 미이수 운영 권한을 학교에 주면 굳이 학기 이수를 고집할 이유도 없어 보이니 학기이수를 강제하는 것도 풀게 될 수도 있겠다. 단, 학기당 이수과목이 많으면 과목의 주당 시수가 적어지게 되고, 그 결과 수업의 질을 의심받게 되므로 이 부분도 학교의 자율성에 맡긴다고 해도 적절히 조절이 될 것이다.